“남의 것을 거저 얻어먹는 것이 흉이지,
내가 내 힘으로 일하는 것이 어찌 흉이란 말이냐?”
조선중기 화가이자 문인이었던 ‘신사임당’이 아이 일곱을 낳고 기를 적에, 남편 이원수는 집안을 돌보기는커녕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돈을 펑펑 쓰기에 바빴습니다. 시댁의 농사도 흉년이라 집 곳간까지 텅텅 비자, 하녀가 사임당에게 조심스레 말했습니다. “마님, 내일 아침에 밥 지을 쌀이 없습니다. 쌀 살 돈도 없고요.” 사임당은 부엌으로 가서 쌀독을 열어보고는 고민에 빠졌습니다. 남편의 친구들 중에는 높을 벼슬을 하거나 부자로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. 그들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쌀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.
그러나 사임당은 고개를 저었습니다. 그렇게 얻은 쌀은 훗날 갚아야 할 빚이 될 것이고, 혹여 그들이 되돌려 받지 않겠다고 한들, 마음 한 구석에 짐처럼 남을 게 분명했습니다. 사임당은 하녀를 불러 물었습니다. “김 대감 댁 아씨가 얼마 후에 혼사를 치른다고 했더냐?” “예, 그런 줄 아옵니다.” “그럼 김 대감 댁에 가서 ‘마님이랑 아씨의 옷가지를 지었냐?’고 여쭈어보고, 만약 짓지 않으셨다면 내가 짓겠다고 전해라.”
“마님께서요?” 하녀는 놀라서 되물었습니다. 당시 양반집 마님이 손수 삯바느질을 하는 경우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. 사임당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. “남의 것을 거저 얻어먹는 것이 흉이지, 내가 내 힘으로 일을 하는 것이 어찌 흉이란 말이냐?” 그 말에 감탄한 하녀는 곧장 김 대감 댁으로 달려가 일감을 얻어왔고, 사임당은 초롱불 아래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옷을 지었습니다. 그와 같이 사임당은 빈궁한 살림을 해결했던 것입니다.
그렇습니다. 남의 것을 거저 얻어먹는 것이 흉이지, 자기 힘으로 일하는 것이 흉이 될 수 없습니다. 하지만, 옛날에는 노동을 천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. 뿐만 아니라, 지금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습니다. 아주 안 좋은생각입니다. 아무쪼록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풍조가 가득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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